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다. 학생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고 누적학점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교사들이 한 개 교실에 번갈아 들어가 여러 과목을 지도한 과거 방식과는 다르다. 고교학점제 성패는 선택 과목 다양성에 달려 있다.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다양하고 풍부해야만 고교 학점제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전국 1500명이 넘는 체육교사들은 최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선 학교가 체육수업 시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에 대한 항의다. 교육부는 교교학점제 전면 실시에 앞서, 이수학점을 204단위에서 192학점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학점 축소는 수업시간 축소를 의미한다. 결국, 다수 학교들은 입시 과목 수업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예체능수업을 줄이고 있다.

인재 양성 행사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 연합뉴스
© 연합뉴스인재 양성 행사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 연합뉴스

과목별 시수는 교사들의 이해관계와 힘겨루기 속에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에게 국영수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교내 국영수 교사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고 대입시험에서도 국영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밥그릇 싸움과 힘겨루기, 교사들에게 잘 보여야 승진할 수 있는 조직 논리, 국영수 중심 대입 방식 등에 다양한 꿈을 꾸는 학생들 미래가 뒤로 밀린 꼴이다. 체육교사들은 성명서를 통해 ▲고교 전 학년 체육수업 주당 2시간 이상 보장 ▲학생들의 체육과목 선택권 보장 ▲체육 시설 확충 등 크게 세가지를 요구했다. 체육교사들은 “국영수 중심 입시제도 때문에 체육수업시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면 선택과목에 체육을 반드시 넣어달라”고 외치고 있다.

선택 과목을 결정하는 것은 학교 재량이다. 교사들이 체육을 선택과목에 넣을 수도, 뺄 수도 있다. 교사들 결정에 따라 체육을 선택과목에 넣지 않은 학교가 훨씬 많다. “선택 과목은 일선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교육부 방침이 예체능 과목을 선택과목에서 빼는 근거로 활용되는 셈이다.

임성철 운산고 체육교사는 “고교생이 선택교과로서 체육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고교학점제 취지에 벗어나며 체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체육이 필요한 청소년의 권리를 짓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의창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는 “고교학점제 대의는 모든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내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교과 편식 식단을 짜서 학생들의 교과 영양실조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종현 평촌고 체육교사는 “선택과목은 학교가 아니라 학생이 선택하는 것”이라며 “먹을 것 없는 뷔페라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말로 다양성이 결여된 선택과목제를 비판했다.

방송댄스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 경향신문방송댄스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자발적으로 학습하며 잠재력을 키우길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가능한 한 다양한 과목을 자율이 아니라 ‘의무’로 선택과목에 넣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학교는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담기에는 너무 작은 그릇이다. 그리고 세상은 교사들이 학교 안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크고 교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변한다. 과거에 배운 것으로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불투명한 미래를 재단하려는 것은 교육자에게는 죄악과 다름 없다. 학교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유토피아가 돼야 한다.